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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4대강 자전거 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완공기념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4대강, 자전거, 소통이라는 전혀 관계없는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는 놀라운 상상력의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대통령의 희망사항과 상관없이 4대강 자전거 길은 홍보만큼 훌륭한 쓰임새를 가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 역사마다 내걸려 있는 4대강 홍보물에서 보이는 장밋빛 낙원은 현실에 없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부홍보책자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 자전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대두하면서 가능했다. 자전거를 타는 문화가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좋은 탈것으로 자전거가 권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열풍이 정부의 정책으로 변주되면서 원래의 취지는 퇴색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가 애물단지가 되고, 그것을 위해 조성한 4대강 길이 오히려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부상하면서, 전혀 친환경적인 자전거의 쓰임새를 보장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만들어놓은 자전거 길은 처음에 만들어진 좋은 자전거의 이미지를 아이러니에 빠지게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 길은 자전거를 운송수단이 아니라 레저로 여기도록 해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전거를 이용해야한다는 당위적 의식마저 무의미하게 전락시켰다. 문제는 자동차가 담당하던 교통수단을 어떻게 자전거로 일정하게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인데, 자전거 길은 전혀 다른 문제만을 더 남겨놓았을 뿐이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경우, 자전거 길이라고 따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나란히 달리는 풍경은 이런 나라에서 그렇게 낯설지 않다. 평소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다가 주말에 레저를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는 생활습관이 정착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국과 정반대로 오히려 이들에게 자전거는 일상이고 자동차가 레저인 셈이다.
영국의 경우도 도심 혼잡세를 징수하고 자동차 운행을 규제한 덕분에 출퇴근 시간에 수많은 자전거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정지 신호 앞에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버티는 스탠딩 기술을 선보이면서 재주를 부리는 출퇴근족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전거 타기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4대강 자전거 길 사업은 애초에 이른 문제에 대한 천착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 없는 자전거 길만 덩그러니 남아서, 건설회사와 자재회사만 덕을 보게 만든 사업이 4대강 자전거 길 사업이 아닐까 한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 수 있다는 낭만은 고사하고 이제 만들어놓은 자전거 길을 유지보수하기 위한 예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타고 다니기를 장려한 자전거가 이제 더 번거로운 일들을 만들어놓았다.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보여주기 식으로 자전거 출퇴근을 선보였던 정치인들이나 정부관계자가 과연 그렇게 평소에 열심히 자전거를 애용한 것인지 되묻는다면 대답이 궁색할 것이다. 말 그대로 자전거는 그들에게 장식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으로서 전국에 쓸모없이 만들어져서 덩그렇게 던져져 있을 자전거 길들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마저 든다. 그 길을 위해 파헤쳐졌을 강둑과 거기에 살았을 이름 없는 풀꽃들이 그리울 따름이다. 자연보호를 명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일들을 저질러놓고 친환경을 노래 부른다면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있는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자연을 즐기기 위해 다른 수단을 만들어 붙인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아무리 그것이 친환경적인 자전거라고 해도 말이다. 덕분에 애먼 자전거만 욕을 들어먹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 문화비평가)
- 기사입력 2012.04.27 (금)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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