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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훈구 세력인 홍경주, 남곤 등은 희빈 홍씨에게 사주하여 대궐의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써 벌레가 파먹게 하였다. 조(趙)씨가 왕이 되려 한다는 이 말은 결국 조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는 것으로 중종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한편, 홍경주 일파는 조광조가 당파를 조직해 조정을 문란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탄핵함으로써 사림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겠다는 의도였다.
이 사건은 결국 ‘기묘사화’를 일으키게 되어 조광조는 김정, 박훈 등과 함께 투옥되고 사사의 명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광필 덕분에 화순에 유배되었다가, 훈구파인 김전 등이 삼정승을 차지하자 그해 12월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역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조광조의 도학 정치에 부담을 갖고 염증을 느끼던 중종은 조광조의 지나치게 급격한 개혁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훈구대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과연 역사가 기록한 그대로 중종이 조광조라는 사람의 정치관에 대한 견해를 바꿔서 그를 내쳤다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다. 다만 그의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에 대한 주장이 중종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혹자는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라고 한다. 절대 왕권이 있는 나라였지만 그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대부들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왕권을 견제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었느냐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반정으로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면서도, 제왕이 부덕하여 민심을 잃으면 덕이 있는 사람이 하늘의 부름을 받아 새로운 왕조를 세워도 좋다고 하는 역성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사상을 백성들에게 주입 시키며 탄생했던 조선이다. 5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나의 왕조를 이어왔다. 그러나 하나의 왕조이면서도 하나의 왕조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못한 것이 바로 반정으로 얼룩진 왕조였기 때문이다.
왕자의 난으로 대권을 거머쥔 태종과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 관해서는 반정을 이룩한 주체가 왕이 된 그들 자신이며 형제지간의 난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연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이나 광해를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는 사실상 사대부들이 천거한 왕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역시 또한 역성혁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대부들의 주장대로 역성혁명이 되려면 내쳐진 왕이 부덕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왕이 부덕해서 내쳤다기보다는, 사대부들의 이해충돌에 의해서 이루어진 반정이라는 견해가 더 지배적이다.
특히 광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중종은 그중 한 사람이다. 연산을 몰아내고 사대부들이 옹립한 왕이다. 그를 왕으로 옹립한 훈구 세력들은 당연히 많은 이권을 차지하려 했을 것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나부터 올바르게 하자는 수신(修身)을 정치의 기본으로 삼아 도학(道學)정치를 하겠다는 조광조가 눈의 가시로 여겨졌고 탄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훗날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조광조는 선조 대에 사림이 집권하면서 복권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는 후학들은 사당과 서원도 설립하였다.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등과 함께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불릴 정도이니 백성들을 위한 정치의 정도를 걷던 사람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조광조의 주청으로 소격서를 혁파할 정도로 신임하던 신하이기에, 중종이 조광조의 인물됨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를 탄핵한 훈구대신들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더 이상 조광조의 편을 들다가는 자신이 연산의 꼴을 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일 수도 있다.
흔히 정치에서는 살아남아야 뭔가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당시 중종이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당장은 자신의 힘이 부족해서 조광조같이 꼭 필요한 신하를 잃지만, 반드시 왕권을 강화하여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별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이라는 권좌에 있던 사람의 태도로는 엄청나게 부적절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하기야 조선 시대는 차치하고 현재 정치권을 보아도 이해 못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라임・옵티머스라고 불리는 희대의 투자사기 사건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통에 이름만 남아 머릿속을 맴돌 뿐, 그 수사에 대해서는 뉴스에도 나오지를 않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라임・옵티머스 수사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검찰개혁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며 검찰총장 징계 운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자 혼자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석연치가 않다.
그런 큰 문제의 속내까지 일개 촌부인 필자 같은 사람이 어찌 알겠냐고 털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기관투자자들이 손해 본 것도 결국은 백성들이 낸 세금의 문제이기에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이 왜 그리 무력했는지 그야말로 백성 전체를 상대로 사기를 친 행각이다.
단순히 손해를 보았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투자했던 개인 투자자들은 누가, 어떻게 구해 줄 것인지 묻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범인들을 체포해야, 그나마 숨긴 돈이라도 찾아 반 본전이라도 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어쩌면 이미 많은 돈을 로비하는데 탕진하고 나머지는 범인들이 잘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면 영 개운치가 못하다.
어쨌든, 하루빨리 권한이 있는 누군가가 나서서 범인들을 체포하여 그 진상을 정확히 밝혀 공개하고, 범인들은 엄벌에 처하는 것이 사건에 대한 답이라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명제다.
그러고 보니, 일단 범인을 잡아야 진상을 밝히고 엄벌에 처하든 말든 하는 것인데, 벌써 엄벌 운운하는 것은 공연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일지도 모른다. 새를 잡기도 전에 삶아 먹을지, 구워 먹을지, 그것도 아니면 삶아서 구워 먹을지를 가지고 다투다가 새가 날아 가버리는 누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나마 필자는 정치를 모르니 갑론을박까지 가지도 못하고 갑론(甲論)에서 그치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일 정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밤새는 줄 모르고 갑론을박에 빠졌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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