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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환 칼럼니스트 |
◆이균용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30년 만에 부결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 대법원장 임명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사법부 수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35년만에 재현 된 것이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 사법연수원 16기) 표결에서 총투표수 295명 중 가 118표, 부 175표 기권 2표로 부결됐다.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167명)이 당론으로 부결을 결정 했고, 여기에 정의당(6명) 등 소수 야당의원들이 부표에 가세했다.
이날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안철상 대법관은 “현 체제에선 현상 유지와 관리 범위 내의 업무수행 등제한적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뿐 법관 인사와 전원합의체 운영은 올 스톱 될 것”이라고 말해 대법원장 공백의 심각성을 짐작케 한다.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준 과정에서 낙마한 것은 1988년 정기승 후보자 부결 이후 처음이다. 입법·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거대 야당 앞에 파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노란봉투법(노조법2·3조)과 방송법 개정을 연내 밀어붙이기로 했고,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반대로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입법들은 야당이 막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한 정쟁과 대선 연장전은 내년 4월 총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가 기능 마비가 우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당론으로 이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반대 투표하기로 했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고위 공직자로서 직무 수행 능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다. 비공개 의총에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당론 부결을 제안했고, 참석 의원 전원 의견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대법원장은 헌법상 대법관 제청, 법관 임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3인 지명의 권한을 가진다. 또한 법원조직법상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서의 권한, 사법행정사무 총괄과 관계 공무원 지휘·감독 권한, 판사 인사와 업무 관련 허가 권한도 갖고 있다. 사법부를 총괄하는 인사·행정의 정점에 있는 자리다.
◆전원합의체 사건 선고-심리 줄줄이 지연
이번 대법원장 부결 사태로 현재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손해배상청구 소송, 교원소청심사 취소소송을 비롯한 5건의 사건에 대한 선고가 미뤄지게 되고, 전원합의체 심리 대기 사건도 줄줄이 밀려 병목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야 할 사건들과 새로운 법리 등이 나올 수 있어 대법원 판례를 기다리는 하급심 판결들도 영향을 받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 인사 측면에서는 내년 1월 1일에 퇴임하는 안철상 대법관(현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제청이 어려워지게 됐다. 대법관 인선은 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포함해 3개월가량이 소요되는데, 퇴임을 앞둔 데다 전례 없이 안철상 대법관이 권한대행으로서 후임자를 제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대법관 중 3명이 비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내년에는 1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에 이어 8월에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 12월에 김상환 대법관까지 퇴임이 예정돼 있다.
◆내년에 대법관 퇴임 많아 사법부 공백 현실화
내년 1월 안철상 대법관이 퇴임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후임으로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김선수 대법관 권한대행 체제 내에서 내년 2월로 예정된 전국 3100여 명 법관 정기 인사를 비롯한 각종 행정이 이뤄지는 것을 야당이 바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법관 인사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후임 대법원장 후보 임명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강대강 대치구도 속에 출구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판단이다. 정부는 적임 후보를 찾아 검증하는데 통상 한 달을 잡는다. 그렇게 찾아내어 다시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올리지만, 168석 의석을 가진 거대야당의 동의를 얻는 후보자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법원장 이하 각종 인사가 지연되는 가운데 다음달 10일 임기가 끝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의 후임 선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헌법재판소 소장도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지명하면 국회에서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후보자 도덕성 흠결에도 문제
여당이 국회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더 신중히 후보를 지명해야 야권의 집단적 반대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지명 뒤 부실한 공직자 재산등록(10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 보유 미신고), 해외에서 취업한 아들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딸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관련한 증여세 문제 등이 드러났다. 후보자가 법원장으로 근무했을 때 법원 구성원들이 참여한 다면평가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그가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다는 것이 야당의 견제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재산등록, 건강보험, 증여세 관련 질의에 “법과 규정을 잘 몰랐다”는 답을 반복했다. 청문회에서 한 야당 의원은 “재판에서 피고인이 법을 몰랐다고 하면 무죄를 선고했느냐”고 후보자에게 묻는 일도 있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도 찬성보다 반대가 많았다. 지난달 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4.1%가 이 후보자 인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찬성은 32.4%였다. 대다수 언론이 이 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100% 신뢰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의 정치구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믿어왔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야당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실력-리더십-도덕성 ‘3박자 후보’찾아야
지난달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함에 따라 대법원장 자리가 보름째 비어있다. 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다음달 10일이다. 자칫 양대 사법기관 수장자리가 모두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국회는 정쟁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실도 야당 탓만 하지 말고 실력-리더십-도덕성면에서 뛰어난 대법원장 후보를 빨리 지명해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은 이번 비상 상황에 대해 누가 더 잘못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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