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간 브라질서 국빈 대우
황·적·청·백·흑 오방색 통해 세상 표현
한국문단 시조 신인상 수상…‘서화일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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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민 특파원.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붓대신 꼬챙이 하나를 들어 땅바닥에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소년이 있었다. 눈만 뜨면 보이는건 하늘과 산과 계곡. 소년은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강원도 정선 부엉새 우는 마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그림이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는 등 그는 지금 세계적인 화가로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됐다. 현재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일본, 브라질, 한국을 오가며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다. 특히 그의 그림은 미술사에 없는 독창적인 화법으로 세계각국의 미술애호가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다.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 때는 시인들의 시낭송회를 겸하기도 했다. 김규태(63) 화백의 이야기다.
김규태 화백이 자신의 작품초대전이 있어 일본에 왔다. 일본 팬들은 그를 위해 아담한 집을 마련해줬다. 그의 저택이 있는 도쿄 나카메구로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소년시절, 어느날 나그네가 사랑채에 묵게됐다. 하얀 백지 위에 몇 번 손을 놀리니 멋진 화상이 됐다. 하도 신기해 따라 흉내를 내보았다. 나그네는 내게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더니 그림 도구를 선물로 주고 훌쩍 떠났다. 이후 그림 그리기는 나의 꿈이자 희망이 됐다. 그 후 땅바닥을 종이 삼아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나에겐 가장 큰 기쁨이었고 유일한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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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 作 ‘청춘의 사랑’. |
그림 공부는 어떻게 했나
산골마을 우리집은 너무 가난했다. 그림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림 공부를 위해 집을 나와 떠돌면서 화가들을 찾아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던 중 16세가 되던해 산수화로 유명한 소헌 박건서 화백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돈이 없어 정식으로 그림을 배울 수는 없었다. 어깨 너머로 보고 집에 돌아와 혼자서 밤새 그림을 그렸다. 본격적인 공부는 브라질에서 시작되었다.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미술사에 없는 나만의 그림을 스스로 터득해 완성시켰다.
브라질 이민은 어떤 사연으로
1984년 31세 젊은 나이에 형님 초청에 의해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브라질 언어도 모르고 돈 한푼 없이 타국땅에 서보니 언어장벽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나를 묶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초청한 형마저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생계가 막막했다.
가져간 지필묵으로 수묵화를 그렸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상파울루에 수묵화 교실도 열어보았지만 그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막막해 무작정 그림을 들고 상파울루중앙미술관을 찾아갔다. 수묵화에 생소한 미술관 전시위원들이 의외로 관심을 보여 다행이도 초대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찌 스케치한 것만 전시를 하느냐”고 물기도 했고 심지어 “왜 그리다가 그만 둔 그림을 내걸었냐”고 하기도 했다. 이구동성으로 “한국이란 나라는 채색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사실 여백의 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질문은 당연했다. 그런데 매스컴의 반응은 달랐다. 항상 보던 그림과는 달라서인지 3개 메이저 텔레비전에서 전시회를 크게 보도했고 브라질 곳곳에서 초대전 요청이 들어왔다. 브라질 ITU대학에선 수묵화를 가르치는 동양화 교수로 초빙까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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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 作 ‘사랑’. |
부엉이 화가로 알려졌는데 부엉이를 그리게 된 사연이 있다면
브라질에서 그림을 그리던 어느날 당시 법무부장관이 내가 무심코 그린 부엉이를 보고 반갑게 그림을 사갔다. 그리고 나를 초대했다. 그의 집무실에 가보니 온통 부엉이 투성이었다. 부엉이 조각상부터 각종 부엉이 그림으로 온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부엉이 덕으로 장관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부엉이는 지혜, 행복, 가족애 그리고 부와 출세의 상징적인 새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부엉이를 그리게 됐다.
독창적인 화법이라고 들었다
내 그림은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한국화도 아니다. 오직 김규태 개성화이다. 내 작품 속에는 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오방색의 풍치가 녹아있다. 모든 색의 중심인 3원색 황(黃)·적(赤)·청(靑)에 아무 색도 섞이지 않는 백(白)과 모든 색에 섞여 있는 흑(黑)을 일컬어 오방색이라고 한다. 세상은 색으로 이뤄져 있는데 오방색이다. 보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모두가 색이고 우리는 색 속에서 살고 있다. 색즉시공이다. 색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수묵의 백과 흑은 정신세계라는 것도 그림을 그리면서 깨우쳤다. 오방색은 한국색이며 한국의 단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영감에서 오는 이미지를 음양오행을 통한 오방색으로 표현했다. 먹의 선은 마음이고 색은 곧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 마음과 몸을 동시에 표현하는 화법이다. 영감으로 느낀 정신세계의 일부를 수묵으로 형상화해 오방색으로 옷을 입힌 그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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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 作 ‘달콤한 사랑’. |
브라질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동양인 최초로 내 작품 한 점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브라질 국회의사당 전시실에서 장관 및 의원의 축하를 받으며 초대전도 가졌다. 브라질 국영방송 프로그램에도 생방송으로 소개된 바 있다. 브라질 전직 대통령 3명에게 초대받아 그림이 전달 된 적도 있고 브라질 ITU대학에서 5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화를 비롯해 한국문화에 대해 강의를 했고 브라질 정부 국제미술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브라질의 대표적인 정치단체인 OPB로부터 인증서와 더불어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수여하는 ‘Top of Quality’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2003년엔 브라질 현대미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브라질 전직 대통령들이 주도하는 국정자문기구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그림이 잘못됐다고 버린 적이 없다.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찢어버리는 것은 눈이나 머리로 그렸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영감을 통해 태어난 자식 같은 존재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에너지와 행복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쉼없이 정진하고 있다. 내 작품 속에는 기쁨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위한 축복의 메세지가 들어있다. 행복·지혜·출세 등을 상징하는 부엉이를 오방색으로 표현한 내 작품은 한 마디로 행복을 부르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문단에서 시조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자작시 한 편 소개한다면
四君子 치다보니 온밤을 새웠는데
墨香에 취하여서 춤추듯 즐거웠네
하룻밤 풋사랑이지만 平生두고 보련다
2012년에 한국문단 시조부문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시인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점이 많다. 옛부터 서화일치사상이 있음을 알기에 그림에 대해서 시처럼 설명을 붙이는 작업은 꾸준히 해왔다. 따로 시나 시조를 써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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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 作 ‘사랑충만’. |
그동안 전시회는 얼마나 했나
개인전은 브라질에서 20회, 일본에서 6회, 한국에서 3회, 미국에서 2회 등 30회 이상 열었고 합동전은 세계각국에서 200회 이상 했다. 이번 일본 방문 역시 전시회 때문에 왔다. 3월 초부터 5월 25일까지 도츠카, 우츠노미아, 오사카 등에서 합동전을 열고 있다.
앞으로의 전시회 계획은
이번 일본 전시회를 마치면 뉴욕으로 돌아가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 올 가을,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여의도 KBS 중앙홀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고 내년 5월에는 뉴욕 메릴렌드에서 초대전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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