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하고, 습관은 쌓이며, 절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술은 딱 한 잔이 제일 좋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처럼, 고마운 마음으로 기울이는 한 잔은 혈액순환을 돕는 ‘순한 소화제’가 될 수 있다. 기분 좋게 이어지는 두 잔은 세상사 근심을 잠시 덜어주는 윤활유가 된다. 그러나 세 잔을 넘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술은 더 이상 약도, 기분도 아닌 ‘경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말하는 ‘한 잔’은 결코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술의 종류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소주잔, 맥주잔, 와인잔, 막걸리 사발까지—잔의 크기가 곧 음주의 양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기준을 잊는다는 데 있다. 한 잔이라 해놓고 사발로 마신다면, 그것은 이미 절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음주운전 기준이 ‘세 잔’이라는 말이 통했지만, 지금의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로 사실상 두 잔 수준이다. 시대가 변하며 사회는 더 엄격해졌고, 술에 대한 책임 역시 무거워졌다.
술과 관련된 옛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술을 줄이라” 하며 작은 구리잔을 내렸더니, 그 잔을 두드려 사발처럼 키워 마셨다는 숙주공의 일화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절제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취흥을 즐기는 ‘취선’의 경지는 낭만일 수 있으나, 오늘날의 세상에서 취함은 종종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 된다.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들 한다. 타고난 체질 역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약 10%의 건강은 개인의 관리로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주 습관’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흥미롭게도, 술을 완전히 끊고 100일이 지나면 삶의 의미가 흐려진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술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인간관계와 문화, 심리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완전한 금주가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마시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멈추느냐’다.
필자 역시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집안에서 가장 허약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몸의 신호를 살피고, 근신하듯 생활을 다듬는다. 목표는 분명하다. 90세를 넘기는 것. 그러나 그 목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바로 ‘술의 유혹’이다.
결국 술은 끊기보다 다스려야 할 대상이다. 한 잔에서 멈출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건강이고 절제이며 삶의 품격이다.
한상면 발행인 겸 대표기자 samhan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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