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문화영토론’과 ‘영토문화론’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서술한 지난 회에 이어서, ‘문화영토론’과 ‘영토문화론’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영토권 규명에 실질적인 활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보기로 한다. 단순히 문화에 의해서 영토권을 규명한다는 개념만 가지고 ‘문화영토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영토권을 규명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한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홍일식의 ‘문화영토론’에 대한 분석이다. 학계 최초로 ‘문화영토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홍일식이다. ‘문화영토’라는 용어의 개념은 1981년 4월 23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내에 영토문제연구실을 발족하는 기념학술강연회에서 홍일식의 개회사 “새로운 문화영토의 개념과 그 전망”에 의해 학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홍일식은 그의 발표논문 「문화영토의 개념과 해외동포의 역할」에서 본인이 문화영토라는 개념을 학계에 최초로 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영토라는 말은 영토와 영공과 영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제부터는 역사적・문화적 개념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영토의 개념을 민족생활 공간의 일체로 보았다. 그리고 문화영토를 확대하는 가장 확실한 매체는 다름 아닌 해외 이주자들로 보았다.
홍일식이 제시한 ‘문화영토론’은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으로서의 영토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으로 관류되는 종축(縱軸)과 문화적 시야로 포괄되는 횡축(橫軸)이 서로 교직되는 개념이다. 그의 ‘문화영토론’은 현존하는 지리적 국경에 대처할 새로운 개념으로, 현재의 지리적인 국경에 의해 정의된 영토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정의된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살펴보면 우리 한민족의 영토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우리 한민족이 역사적으로 찬란한 선진문화를 보유해 온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찬란한 문화를 보호・육성하여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함으로써 미래의 우리 문화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미래지향적인 ‘문화영토론’에 치중하여, 우리 한민족의 문화영토 수복에 관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이론은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전 세계에 전달해서 우리 전통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이 넓어지면, 비록 영토권은 소유하지 못 할지라도 우리의 ‘문화영토’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21세기와 한국문화'에서 ‘우리 한민족의 효 사상은 인본주의・이타주의・평화주의의 3대 지표를 함축하는 사상으로 인간 회복과 인간구원의 큰 빛이요 큰 길이 될 수 있다. ‘효’ 사상을 인류의 현대생활은 물론 미래의 변화에까지 적응하는 실천지표로 발전・진작시켜 전 세계가 우리 문화영토에 편입되도록 우리 한민족의 문화를 새롭게 일으켜야 한다.
‘효 운동’은 민족의 안팎에서 일어나야 한다. 인류문명 한계극복의 대안으로 제기된 평화지향의 ‘문화영토론’은 우리 전통문화의 ‘효’ 사상을 인류구원의 실천지표로 제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홍일식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우리 한민족의 ‘효’ 사상을 전 세계에 퍼트려, ‘효’ 사상을 기반으로 한 인류공동체를 구성한다면 전 세계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일식의 ‘문화영토론’은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領域)’이라는 의미로 ‘문화영토’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뿐, 영토권 개념은 일절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토(領土)라는 단어가 어떤 나라의 소유나 통치로 인해서 권리가 미치는 영역을 의미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홍일식이 주장하는 바는 그 영토에 대한 권리는 전혀 없고 단순히 우리 한민족의 전통문화가 실행되는 문화영역을 전 세계로 넓혀 나가자는 것이므로, ‘문화영토’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홍일식의 주장처럼 ‘영토라는 말은 영토와 영공과 영해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역사적・문화적 개념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아무리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고자 해도 ‘문화영토’라는 용어에 ‘영토’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서는 소유나 통치에 의한 영토권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토권을 동반하는 영토의 기본개념과는 동떨어져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이라는 다소 추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념을 설정함으로써, ‘문화영토’라는 호칭 자체가 자칫 추상적인 개념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장소와 시대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접촉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소유나 통치와는 거리가 먼 ‘문화’라는 단어와 소유나 통치의 권리가 명확한 ‘영토’라는 단어를 합성하면서, 권리는 배제함으로써 해석이 애매모호한 용어로 만드는 모순을 범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더욱 ‘문화가 실행되는 영역’이라는 의미의 ‘문화영토’를 권리가 행사되는 ‘영토’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재와 미래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 영토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오인되어 또 다른 영토분쟁의 소지를 낳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필자는 홍일식의 ‘문화영토’에 대한 개념과 차이를 두고, 영토권 규명을 위한 목적으로 ‘문화영토론’을 새롭게 구축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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