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사랑하기에 감옥에 가다
잠자던 미국 양심의 각성
훈독회의 기원
옥바라지로 세운 '참부모'의 위상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84년 7월 20일, 세계 평화와 미국의 영적 각성을 위해 헌신해 온 문선명 총재가 댄버리 교도소의 차가운 철창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탈세 혐의에 따른 수감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신흥 종교 지도자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미 행정부의 편향된 사법권 행사이자,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나아간 종교적 수난의 길이었다.
기획된 표적 수사와 사법적 불의
댄버리 사건의 발단은 1970년대 초반 발생한 소액의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 신고 누락이었다. 당시 문 총재는 종교 단체의 자산을 관례에 따라 관리했을 뿐이며, 이는 미국 내 다른 기독교 교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축적된 통일교에 대한 적대감은 이를 '탈세'라는 죄목으로 둔갑시켰다. 수사 당국은 유례없는 고강도 조사를 벌였고, 결국 1만 달러 남짓한 세금을 문제 삼아 1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는 명백한 '표적 수사'이자 '종교 탄압'의 산물이었다.
미국을 사랑하기에 감옥에 가다
문 총재는 충분히 피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옥에 가겠다"며 스스로 수감의 길을 택했다. 그는 댄버리 교도소에서 수인 번호 '19247-054'로 불리며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했다.
문 총재는 교도소 내 화장실 청소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동료 수감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중에는 교도관들조차 "문 목사가 청소한 곳은 빛이 난다"며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매일 새벽 미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자신을 감옥에 보낸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잃지 않기를 간구했다.
옥바라지로 세운 '참부모'의 위상
문 총재가 옥중에서 투쟁할 때, 밖에서는 한학자 총재가 '섭리의 안주인'으로서 교단을 지켰다.
한 총재는 무더위와 추위 속에서도 매일같이 댄버리 면회실을 찾아 문 총재의 건강을 살피고 섭리 보고를 올리며 옥중과 옥외를 잇는 생명선 역할을 했다. 한 총재의 '눈물의 옥바라지'와 지도력은 전 세계 식구들에게 '참어머니'로서의 영적 지도력을 확고히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잠자던 미국 양심의 각성, "우리가 문선명이다"
문 총재의 수감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평소 신학적 견해차로 대립하던 제리 폴웰 목사 등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정부의 종교 간섭은 모든 종교의 위기"라며 옹호 운동에 나선 것이다. 1984년 7월 2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천 명의 성직자가 모여 종교 자유를 외쳤고, 이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초종교 연합 전선을 형성했다.
훈독회의 기원
문 총재는 면회 오는 식구들에게 "나를 보러 오지 말고, 내가 남긴 말씀을 읽으라"고 당부했다. 좁은 면회실에서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주며 심정을 전수했던 이 가르침은 오늘날 통일교의 핵심 전통인 '훈독회'의 뿌리가 되었다.
옥중 서신 "원수를 용서하고 미국을 사랑하라"
문 총재는 댄버리 교도소의 좁은 방에서 전 세계 식구들에게 수많은 서신을 보냈다. 이 기록들은 오늘날 소중한 섭리적 사료가 되었다.
자신을 감옥에 보낸 미국 정부를 원망하기보다,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잃지 않도록 더 뜨겁게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참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수감 중에도 세계평화교수협의회와 언론 활동 등 전 지구적 평화 운동의 보고를 직접 챙기며 섭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서신 곳곳에는 "몸은 갇혀 있으나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고백을 담아 통일교인들에게 신앙적 확신을 주었다.
30만 목사들의 통곡과 초종교 연합의 기적
문 총재의 수감은 잠자던 미국의 기독교를 일깨웠다. 평소 신학적 견해차로 대립하던 30만 명 이상의 미국 목회자들이 통일교 원리를 공부하며 무죄 석방 운동에 동참했다.
1984년 7월 2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종교 자유 수호 대회'에는 수천 명의 성직자가 모여 "만약 문 총재가 감옥에 가야 한다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외쳤다. 이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종교 간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댄버리의 성자 19247-054번 수감자의 하루
문 총재는 교도소 내에서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헌신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화장실과 복도 청소를 마다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일어나 닦아낸 화장실은 "빛이 난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동료 수감자들의 고민을 듣고 배급 음식을 나누며, 교도소 안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추앙받았다.
미 언론의 태도 변화
초기 비판적이었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 주류 언론들도 점차 태도를 바꾸어 "미 정부가 종교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적 칼럼을 싣기 시작했다. 출소 시점에는 많은 언론이 그를 '종교 자유의 상징적 투사'로 재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미국을 구하러 왔다" 1985년 8월 20일의 감동
1985년 8월, 13개월의 수감을 마치고 출소한 문 총재를 맞이한 것은 승리의 환호였다. 워싱턴 소재 옴니 쇼어햄 호텔에서 열린 환영 오찬회는 전직 상·하원 의원, 저명한 신학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장관을 이뤘다.
문 총재는 이 자리에서 "나는 미국을 고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미국을 구하러 왔다"는 역사적 명연설을 남겼다. 자신을 핍박한 나라를 오히려 축복하는 그의 모습에 귀빈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댄버리가 남긴 위대한 유산
통일교인들에게 댄버리는 패배의 장소가 아니었다. 문 총재가 미국의 모든 불의를 몸소 탕감하며 승리한 '성지'가 되었고, 이 수난을 거치며 완성된 보수 네트워크와 초종교 연합은 이후 레이건, 부시 행정부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평화 섭리의 토대가 되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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