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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용수 이사장. |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는 투쟁과 전쟁을 겪어 왔다. 영토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민족·국가 간의 전쟁,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한 투쟁이 계속돼 온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4년 7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그 규모나 성격 면에서 이전의 전쟁과는 달랐다. 이 전쟁은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군과 러시아·프랑스·영국 등의 연합군이 맞서 싸웠던 세계적인 전쟁이었다. 이탈리아는 3국 동맹에 가담했으나 초기에 중립을 지키다가 연합군에 가담했다. 유럽에서 발발한 이 전쟁은 아시아로까지 번져 일본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4년간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은 약 1000만명의 인명을 희생시키고 수많은 재산을 파괴한 채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승리한 연합국을 주축으로 ‘국제연맹(LN)’이 창설됐다.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경제적.사회적으로 국제협력을 증진한다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1919년 1월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토마스 월슨의 주도로 집단 안보와 국제분쟁의 중재, 무기 감축, 개방 외교를 원칙으로 하는 국제연맹의 규약을 정하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었다.
국제연맹은 설립 후 10년 간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 효과적으로 운영됐다. 특히 국제협력 분야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과 소련의 침략행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기능이 약화됐다.
국제연맹은 설립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과 중립국을 포함한 42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나 그 후 63개 국으로 늘어났다. 중요 기관으로는 총회와 이사회.사무국이 있었고 관련기관으로는 상설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노동기구 등을 뒀으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전쟁 방지기능이 취약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침략전쟁 방지.군비 축소에 역점을 두는 집단 안전보장제도를 도입했지만 경제적 제재가 부분적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비밀조약의 금지와 재심의에 의한 평화적 변경 등의 연맹 규약은 있었으나 그 실효성에는 한계를 지닌 국제기구였다.
결국 제창국인 미국이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의회의 인준 거부로 회의에 불참했고 영국과 프랑스 간에도 이견이 많아 신흥 군국주의 세력의 도발에 집단적인 제재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의 만주와 중국 본토 침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독일의 베르사유조약 거부 등을 막지 못한 국제연맹은 2차대전 발발과 함께 붕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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