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하지만 ‘대고려국’은 고구려나 고려의 별칭이 아니라, 1917~1918년경에 겐요샤가 중심이 된 일본 우익과 중국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 군벌과 함께 대한의 사대부들을 주체로 한.중.일 3국이 만주에 건국하고자 했던 독립국이다.
물론 건국까지는 실패했지만, 1918년 일본 왕이 일본 측 대표인 겐요샤의 수장 도야마 미쓰루와 함께 한민족 측 실무자인 정안립이, 한민족 측 대표인 양기탁이 독립운동가로 투옥된 전력이 있어서 일본 조정이 만남을 기피하는 바람에, 대신하여 만난 자리에서 조선 총독이 동의하면 건국하자고 함으로써 일왕까지 건국을 기정사실화했던 나라다.
‘대고려국’을 설립하려던 일본 측 주체가 훗날 만주국을 건국하는데 일본 측 주체가 됐던 군부가 아니라 겐요샤였던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다가 어느 세력이 승리하던 결국은 중국을 복속한다는 계획하에, 군부는 북방 군벌을 지원하고 일본 왕실을 등에 업은 최고의 극우 단체 겐요샤는 남방 군벌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대고려국’ 건국에 참여한 중국 세력이 남방 군벌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2021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만주의 분노-코로나와 ‘대고려국’의 진실-'에 실화를 배경으로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대고려국’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다.
비밀리에 추진되었던 ‘대고려국’의 건국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본 제일의 신문이 될 것을 목표로 오사카에서 창간된 대정일일신문(大正日日新聞; 다이쇼니치니치신분; たいしょうにちにちしんぶん)이 1921년 3월 27일부터 4월 6일까지 11회에 걸쳐서 석간 제1면에 [‘대고려국’ 건설]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면서부터다.
그 기사들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만주는 고대부터 한민족의 영토였으며 고구려가 호령하던 땅으로 한민족의 영토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은 그곳에 일본과 중국과 힘을 합쳐 독립국을 건국할 명분이 있다고 하면서 수도는 간도 길림으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생각하는 ‘대고려국’의 국체와 정체 등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은근히 장쭤린을 견제하는 기사도 싣는 등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다가 결국 ‘대고려국’의 지도자는 대만 총독인 덴 겐지로가 가장 적임자라는 기사도 싣는다.
‘대고려국’ 건국이 무산되고 수년 후에 일본 신문에 일본인이 게재한 기사가 우리 한민족을 만주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그 당시 만주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민족으로 특히 만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주 남부에 해당하는 간도 주민 중 약 80%가 우리 한민족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만주를 지배하는 데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 한민족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기사 첫 회에 고구려 건국 설화를 실으며 고구려 영토인 만주에 건국될 ‘대고려국’의 주체가 그 후손인 대한제국의 사대부라고 한 것은 만주가 대한의 주인인 한민족의 영토임을 인정했으며, 중국 역시 그 사실을 인정하고 동참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한.중.일 3국이 건국을 계획했지만, 전국목적은 3국이 제각각이었다. 일본은 우리 한민족과 중국 남방 군벌과 함께 만주에 독립국 ‘대고려국’을 건국하여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만주를 지배하려고 했다.
중국 남방 군벌은 당시 북방 군벌로 분류되던 장쭤린을 비롯한 청나라 후손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만주에 독립국을 세움으로써, 북방 군벌이 시시각각 조여오는 위협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청나라로부터 겨우 독립하는 와중에 또다시 청나라 후손들의 위협을 받기 싫으니 그 근거지인 만주에 한민족을 주축으로 일본과 힘을 합쳐 독립국을 건국하자는 속셈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 한민족은 한일 병탄으로 인해서 한반도가 이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니, 우리 한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만주에 또 다른 나라를 건국해서라도 그를 기반으로 한반도까지 독립시키자는 의도였다. 특히 고종황제나 의친왕 혹은 영친왕을 망명시켜 입헌군주국을 세우자는 목적이었다.
서로 목적이 다르다 보니 건국이 순조로울 수도 없으려니와 1919년 고종황제의 암살과 함께 3.1만세 대일 항쟁이 발발하고 당시 조선 총독이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그에 대한 문책 인사로 일본으로 송환되자, 이를 계기로 일본 군부가 나서서 만일 만주에 우리 한민족을 주체로 독립국을 세운다면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에 불타는 한민족은 만주를 기반으로 한반도까지 밀고 들어올 것임을 강조하며 방해하는 바람에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군부와 겐요샤가 중국에 지원하는 대상이 각각 다르다 보니 서로 알력을 갖고 있었고, 각자 자신들의 방식대로 만주를 점령하는 것이 만주에 대한 주도권을 잡아 이권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견제하는 대상이었으니, 결국 ‘대고려국’의 건국 실패는 군부가 만주에 만주국을 건국할 명분과 방법만 제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만주가 한민족의 영토이니 지금 한반도를 통치하고 있는 일본은 만주를 통치할 수 있다는 명분과 함께 만주의 마지막 왕국이 청나라였으니 청나라 후손을 내세운다면, 그것도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교로 푸이(愛新覺羅溥儀; 애신각라부의)를 내세워서 건국한다면 확실한 명분을 세울 수 있다는 기발한 안을 제공해 준 꼴이 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