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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그런 대마도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판적봉환 당시 일본에 강점된 것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조선이 대마도에 대한 영토 의식이 없어서 대마도를 포기한 것으로 대마도가 일본영토라는 망발을 일삼는 무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런 망발 자체가 일본이 만들어 내어 세뇌시킨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예일 뿐이다.
먼저 고려시대를 잠시 언급하면 고려사람 종중상이 대마도로 건너가 1246년에 대마도 1대 도주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선 중기, 1740년에 박사창이 편찬한 '동래부지'에 ‘대마도주 종씨는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가서 종씨로 성을 바꾸고 도주가 되었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대마도를 우리 한민족의 영토로 인식한 것이 확실하다.
일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대마도 이즈하라 카미자카 전망대 안내문에 명기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언젠가는 영토권에 문제가 될 것이 두려웠는지, ‘그동안 초대 도주가 종중상으로 알려진 것은 역사를 다시 연구해보니 잘못된 것’이라고 2011년에 안내문을 교체했다. 빤히 속 보이는 역사 왜곡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다.
조선시대 역시 대마도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고 인식한 증거 중 하나로, 태조 이성계는 건국 5년인 1396년에 대마도 왜구를 토벌한다. 건국 5년밖에 되지 않아서 내부 정리에도 정신이 없을 시기에 대마도를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의 이끼도까지 정벌을 단행했다.
왕조실록 태조 5년(1396) 12월 3일 기사에 보면, ‘문하 우정승 김사형을 오도 병마 도통처치사로 삼고 일기도(一岐島)와 대마도(對馬島)를 치게 하였다. 길을 떠날 때, 임금이 남대문 밖까지 나가서 전송하고, 사형에게 부월과 교서를 주고 안장 갖춘 말·모관·갑옷·궁시·약상자를 내려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태조 6년에 그들이 돌아올 때, 태조가 직접 흥인문(興仁門) 밖까지 마중 나갔다는 기록을 보면 승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3년 후, 세종 1년(1419)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한다. 대마도가 확실한 우리 한민족의 영토로 그 영토를 지키고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사를 출동시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대마도 정벌의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대마도 정벌 목적이 왜구 소탕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대마도가 왜구의 소굴이기에 한반도 남부 해안에 출몰하여 해적질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소탕한 것인지, 아니면 대마도가 조선 영토이고 주민은 조선 백성으로 조선 영토를 침략해서 조선 백성을 노략질하고 능욕하는 왜구를 소탕하려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다닐 때, 대마도에 근거를 둔 왜구를 소탕한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건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와서 엄청나게 역사를 왜곡 해석하는 식민사관으로 절대 아니다.
대마도가 왜구의 근거라서 소탕한 것이라면, 대마도가 일본영토라고 오인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서라지만, 대마도 정벌은 침략행위다. 태조, 세종 할 것 없이 대마도 정벌을 쉽게 단행할 일이 아니었다. 왜구 토벌이 영토권을 지키고, 조선의 백성인 대마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였기에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왕조실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세종 1년 6월 9일 대마도 정벌을 명하는데, ‘대마도는 우리나라 땅인데,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마음대로 군민을 살해하고, 부형을 잡아가고 그 집에 불을 질러서 고아와 과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우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으니, 그 고기를 씹고 그 가죽 위에서 자기를 생각함이 여러 해이다.’라고 함으로써 대마도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왜구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태조 때 대마도와 일본영토인 이끼도를 함께 정벌한 것은, 일본과의 전쟁 선포로 오인받을 수 있는 외교적 문제를 각오하고 이끼도까지 정벌함으로써 대마도 주민과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즉 왜구들의 본거지는 이끼도로 대마도를 자주 침범하여 자신들의 본거지처럼 만행을 일삼아서 대마도와 같이 정벌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문화와 역사의 어느 구석을 들여다보아도 대마도가 일본영토일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우리 한민족의 영토이어야 하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대마도가 일본영토로 치부되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벌어진 동북아 영토 유린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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