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대한민국 어업을 지도하던 공무원이 적군인 북조선 군사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대 참사가 빚어졌다.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해서 어쩌고 할 때는 모르지만 일단 내 백성을 겨눠 총으로 사살한 이상 적군이다. 그런데 그 사건이 대통령에게 보고 된지는 10시간이 지났고, 발표는 33시간 만에 이루어졌다는데, 월북하다 죽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발표였다.
내 백성이 적군의 총에 맞아 죽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라의 안보가 어른거리는데 더 중요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종전과 평화 운운하며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 올 것처럼 온 백성을, 아니 전 세계 인류에게 연설을 했다. 바로 조금 전에 적군이 내 백성을 죽이는 도발이 일어났고 그 진상 규명도 안 됐는데 평화를 노래했다. 도대체 내나라 내 백성이 적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을 알고도 그런 연설이 나올 수 있는지 기도 안 막히는 현상이다.
게다가 무슨 근거로 월북하다 죽었다고 했는지, 사망한 공무원의 형이 애가 타고 억울해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호소하기 바쁜 모습을 보면서, 만일 지금 월북 운운하는 자들이 제 동생이 죽은 거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필자마저 애가 끓는다.
더더욱 북괴 수뇌 김정은이 사과문 하나 덜렁 보낸 것 가지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떤다. 여당은 대북규탄을 중단한다고 하고, 이례적인 조치 운운하면서 김정은을 계몽주의라고 비유하는 인간이 있지를 않나,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사과는 사과고 그에 대한 합당한 규탄은 규탄이다. 남의나라 백성 총으로 쏴죽이고 사과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냐?
시신을 정중히 돌려드리겠다는 단서를 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잘못이니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미안하다는데 그 말 한마디에 절절매는 이들은, 정말이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과문이나 북조선 적군들이 보내온 것 기타 어디에도, 사망한 공무원의 월북이야기는 없더라는 거다. 만일 월북하려고 했었다면 북조선 쪽에서 먼저 난리 났을 거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목숨을 걸고 헤엄을 쳐서 영웅적으로 월북을 시도했으나, 코로나19사태를 맞이하여 인민들을 위한 방역이 그 무엇보다 먼저 앞서야 한다는 김정은의 가르침을 받들어 불가피하게 사살했노라고 자신들을 정당화 했을 것이다.
그 좋은 선전거리를 놓치고 갈 인간들이 아니다. 그게 빨갱이 공산주의의 특징 아닌가? 적을 비방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호재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내가 잘 못한 것은 내가 아닌 나를 지지하는 자들로 하여금 들고 일어나서 덮어버리게 하는 수법이 딱 그들의 수법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들이 한 말이라고는 고작, 우리 대한민국 공무원에게 누구인가를 밝히라고 해도 답이 없어서 쐈다고 했다. 그 먼 거리를 헤엄쳐 표류해 지칠 대로 지쳤는데 어찌 수하를 하는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파도소리에 뱃소리에 그 말이 들리기나 했겠는지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부분에서 역사 속의 한 인물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들을 피해서 조선의 조정 전체가 남한산성에 갇혀 있으면서도, 청나라 군대의 현실과 전력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명분과 실리를 내세우며 자기들끼리 치고받을 때 소현세자가 하시던 말씀이다.
"적군이 강화조약을 위해서 세자가 나오라고 하면 기꺼이 나간다.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나라 없는 세자가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냐?"
청나라가 강화를 하고 싶으면 세자를 보내라고 했을 때, 겉으로는 명분만 내세우며 실질적으로는 제 목숨 부지하고 제 영달을 위해서 정치를 하던 대신들이, 차기 지존이신 세자가 오랑캐 앞에 나갈 수 없다고 반대할 때, 소현세자가 스스로 나서며 하셨던 말씀이다.
대신들의 속내를 빤히 알고 계신 소현세자는, 남한산성 밖에서 청나라 군대에게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백성들과 남한산성 안에 있으면서도 그 추운 겨울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상감과 대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굶어 죽고 얼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먼저 걱정했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세자도 필요 없다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에 굴복하는 날에는 이제까지의 정치판도가 흔들림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대신들은 하루하루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은 제 기득권을 지킬 방도를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소현세자가 항복하러 나가는 것을 극구 막았던 것이다. 결국 소현세자는 강화하러 나가지 못했고, 이에 광분한 청나라는 인조가 직접 나와서 항복하는 조건으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는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다. 나라의 근본인 내 백성이 적군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이 시점에서 전쟁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상대방 책임자 처벌과 시신을 정중하게 인도해 줄 것 등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강력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내 백성을 자기들 마음대로 총 쏘아 죽인 적군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군의 수뇌가 던진 사과문 한마디에 감동할 때가 아니라, 내 백성의 안전과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나라가 취할 조치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현세자의 그 말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나라 없는 세자가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냐?"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