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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6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왜족 일본에게 착취당한 류큐 백성들이 당한 두 번째 고난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 때다. 천연의 요새로,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어진 곳 중 하나가 바로 오키나와다.
1945년 4월 미군이 육해공군 합동 상륙작전을 감행하고 3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포화를 쏟아부으며 치른 참혹한 전투를 거쳐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미군은 전사 1만 2000명, 부상 3만6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일본군은 약 10만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류큐 백성들은 실제 그 피해 정도가 파악도 안 될 정도로 참담하게 희생되었다.
미군이든 일본군이든, 그들은 전쟁 당사자로 피해 상황이 집계되는 것은 물론 사망자는 어쩔 수 없더라도 최소한 부상자는 치료라도 받았다. 하지만 류큐 백성들은 미군도 일본군도 거들떠보지 않았고, 포탄에 맞든 총탄에 맞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부상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군과 일본군은 자신들의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전사했으니, 자기들 딴에는 의미 있는 부상과 전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류큐 백성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침략자끼리의 전쟁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6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착취를 일삼던 일본군과 해방군이라는 팻말만 달았을 뿐 실제로는 일본군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미군의 싸움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던 그대로, 미군은 전쟁에서 승리하자 류큐국을 독립시켜주지 않고, 1945년부터 오키나와를 공식 점령하고 실질적인 통치를 시작했다.
1945년부터 미군정이 시작되자, 류큐 사람들은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다. 독립과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66년이라는 긴 착취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마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류큐 사람들의 바람은 일거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67년 11월, 미국과 일본이 류큐 제도 반환에 합의했다. 류큐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사국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밀실에서 이뤄낸 합의로, 응당 독립해야 할 류큐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류큐 백성들은 국제사회와 미국에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각도로 전달했으나 무시당하고, 미국은 일본과의 이권 교환을 위해서 1972년 5월 25일 오키나와를 다시 일본에 반환하였다. 때리는 일본이나 말린다고 나섰던 미국이나 그게 그거로 믿을 놈 없고,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국제관계의 질서를 류큐 백성들은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류큐 백성들은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등의 단체를 통해서 '류큐연방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독립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류큐 백성들이 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파생되는 문제와 일본의 차별적인 대우에 관한 문제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왜족 일본 입장으로, 류큐 백성들의 절박한 독립 염원에 대한 폄하일 뿐이다. 류큐 백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꾸준히 독립을 추진해왔다.
미군정 당시인 1950년에 미군과 류큐 백성들은 오키나와기라고도 불리는 류큐기를 류큐 국기로 제정하고 류큐 통합정부가 들어서면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1967년 미국이 약속을 저버린 채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에 합의하자, 1968년 ‘류큐독립당’을 필두로 류큐 공화국의 국기로 삼성천양기(三星天洋旗)를 제정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들은 애타게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권에 눈이 멀어 정의로운 국제관계를 무시하고 다시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한 미국 때문에 독립이 연기되었을 뿐이다.
필자는 류큐어로 우치나(うちな)라고 부르던 오키나와, 아이누의 땅이라고 에조치(蝦夷地)로 불리던 홋카이도, 우리 한민족의 영토인 대마도(對馬島)를 일본이 잔인하게 병탄하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각각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 '대마도의 눈물'을 2017년에 출간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필자는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본 칼럼에서는 역사적 흐름의 표면만 기록했기에 매우 나쁜 짓을 했다고 느낄 뿐이지만, 실제 진행 과정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폭력을 동원한 왜족 일본의 능욕과 테러와 살상 현장이 너무나도 잔혹하여, 나도 모르게 치가 떨리는 분노로 일그러진 슬픔이 북받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집필 중에는 몇 번인가 작업실이 떠나갈 정도로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아무리 남의 영토가 탐나서 벌인 일이라지만 사람이라면 행할 수 없는 짓이었다. 미개한 인간으로 살던 고대도 아니고, 불과 백몇십여 년 전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왜족 일본은 이 세상 어디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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