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권력찬탈’ ‘탐관오리’ 지도자들 목불인견
“평등·자유 두 기둥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참사랑(박애) 중심 수수작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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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명 선문대 명예교수 |
라오콘과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이 목마를 끌어 성 안으로 들여왔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은 그날 밤이 깊어진 틈을 이용, 목마에서 빠져나온 뒤 성문을 열어 매복해있던 그리스군을 들어오게 했다. 이 이야기는 ‘아이네이스 Aeneid’ 2권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기원전 20세기에 그리스반도에 남하한 아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들은 미케네를 중심으로 정착하더니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다. 미케네 문명은 크레타나 트로이 문명보다는 나중에 일어나 그 영향권에서 발전하지만 점차 이 두 문명을 추월하고 강력한 식민정책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들이 세력을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은 내륙이 아니라 바다 쪽이었다. 내륙 쪽으로는 척박한 산악지대였을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은 반도 국가 민족으로서 일찍이 해상무역에 눈을 떴으며 그만큼 배 만드는 기술이나 해양 산업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이미 기원전 15세기경에 크레타 문명을 복속하고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부 해안 도시를 비롯하여 전 지중해 해안과 도서에 수많은 식민 도시를 거느릴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한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12세기는 이런 미케네 문명이 최전성기를 누리고, 아울러 고대 그리스인의 식민 개척이 최정점에 이르던 시기였다. 트로이 전쟁은 바로 이 시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벌인 계획된 침략 전쟁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그리스가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으며 자신들 이외의 타민족들은 야만족으로 여겼다. 중국인이 중국을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주변 민족들을 오랑캐로 부른 것과 비슷하다. 고대 그리스인이 주변 이민족들을 점령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에 꺼리지 않은 것도 이런 선입관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복이 이들에게 오히려 문명의 혜택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의 동쪽 끝 흑해를 지나 내륙으로 갈수록 하나같이 이상한 민족들에 관한 서술뿐이다. 예를 들면 그곳에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민족, 산양의 다리를 한 민족, 1년 중 6개월은 잠을 자면서 보내는 민족 등이 있다는 식이다. 우리가 헤로도토스를 위대한 역사의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그도 역시 고대 그리스인이 갖고 있던 선민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헬레네 납치사건’이나 ‘파리스의 심판’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내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것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다. 방대한 역사를 파악한다는 것은 난감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적용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으로 본다.
역사란 사실(fact)과 관점(view)에 따라서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의 현격한 차이가 생긴다. 유물사관이 전자에 속하면 유심사관(唯心史觀)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둘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한 사상이 바로 ‘통일사상’이다. 동일한 인간의 내적 성상을 본 것이 유심론(唯心論)이라면 외적 형상을 본 것이 유물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손등과 손바닥과 같은 이치로 손이 양면으로 되어있듯이 동일한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핵심인 좌익과 우익을 아우르는 두익사상(頭翼思想)은 자이로스코프와 같아서 양쪽의 균형추라고 볼 수가 있겠다. 일갈하여 공산주의가 정반합(正反合)에 의한 변증법적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인데 비하여 통일사상은 정분합(正分合)에 의한 수수법적(授受法的唯一論)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의 정국과 같이 지금 우리나라는 사상의 대공황(大恐慌)속에 처하고 있다. 승공두익사상(勝共頭翼思想)으로 오늘의 난국이 수습이 되기를 소망한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진단해보자. 직시해보면 트로이 목마가 요소요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에 포착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의 플레임에 갇혀서 갈팡질팡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누가 부인을 하랴? 그 무엇보다 진정성과 신뢰감을 받아야할 정치인들의 작태는 가관(假觀)이 극에 달하고 있는 오늘이 아닌가? 정치에 대한 혐오감 내지는 불신감이 팽배하고 있다. 국민이 반대하는 날치기 법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거대여당의 횡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내로남불, 후안무치한 철면피들의 아전인수는 이성을 상실한 폭군처처럼 보인다.
여당이 여당답지 못하고 야당이 야당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의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의 권력과 이권의 카르텔을 끊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서글플 뿐이다. 내년 대선을 목전에 놓고 권력찬탈과 탐관오리에 눈이 어두운 지도자들의 목불인견은 또 어쩌랴. 이런 판국에 코로나정국 때문에 정치방역, 사기방역이라는 사실과 루머가 혼재한 현 상황은 혼돈과 혼란과 갈등의 극치가 아닐 수가 없다. 거짓말을 손바닥 뒤엎듯 하는 감언이설의 사기꾼들 권모술수에 놀아나서는 아니 된다. 머리는 차가운 이성으로, 가슴은 뜨거운 감성으로, 사지백체는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에 순종하는 사려 깊은 언행심사가 요청되고 있다.
작금의 우리나라와 사분오열한 정치집단의 분열을 바라보면서 트로이목마를 생각해 본다.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유회(亢龍有悔)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용(雜龍)들의 정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난감하게 된 까닭은 마타도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적진 깊숙이 들어가 암약하는 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는 것은 마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금언이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좋으리라.
전체주의인 공산 사회주의와 개인주의인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평등과 자유라는 두 기둥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심에 참사랑(박애)이 있고 이것을 중심하여 자유와 평등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할 때 인류가 소망하는 평화세계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실천궁행(實踐躬行)을 한다면 인류가 그렇게 소망했던 행복의 유토피아(Utopia)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윤덕명 선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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